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오늘날 우리에게는 여성이 교육받는 일 자체는 당연하다. 그러나 조금만 이전 시대로 가보아도 여성은 교육 대상으로 고려되지조차 않았다. 여성이 직접 선언문을 게재하고, 요구하고, 실패하고, 또 요구하고, 어느 단체는 망하고, 또 다른 단체가 생겨나고, 누군가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고, 호소하고, 모금을 했다. 시대와 맞물려 요구가 조금 더 관철되고, 때로 좌절되는 과정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이 역사는 자주 생략되어 우리는 마치 처음부터 모두에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었던 양 착각하게 된다.


🔖 여성에게는 역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 세상은 분명 변했다. 정말 낯설던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조금 덜 낯설어졌다. 여전히 오래전의 그들과 똑같은 소리를 해야만 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늘날엔 좀 덜 외로워졌다. 우리는 이미 죽어버린 이들의 절망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들이 희망하던 세상에 한 발짝 다가갔다. 그리고 내 앞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공들여 찾아낸 그들은 지금의 우리와 놀라우리만큼 닮았다. “주동자는 없다”고 말하던 동일방직의 여공과 “우리가 배후다”라고 외치는 이화여대의 투쟁, 가락지와 비녀를 모아 세운 근화여학교와 크라우드 펀딩으로 성사되는 수많은 페미니즘 프로젝트, 소속된 단체도 규약도 없이 개인으로 존재하던 영 페미니스트와 오늘날의 우리. … 우리는 불편함을 직시하면서 같은 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가시적인 움직임이 없어 흔히 침체기라고 평가받던 시기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걸었다. 기관으로, 연구소로,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내실을 다져갔고 그곳에서 또 다른 움직임에 동참한 이들을 맞이했다. 그러니 역사를 가진 쪽은 사실 누구인가? 나는 유구한 역사의 결과물이다.